-- 책을 읽자

릴케의 죽음과 장미에 관한 짧은 애기

오르나비 2007. 4. 8. 12:13

 

  

장미여, 누구를 공격하려고

가시를 품고 있는가?

너무나도 가냘프기 때문에 이렇게 가시라는

무기를 가질 수밖에 없었는가?

 

하지만 장미여. 이 가시를

이용해 누구를 경계하려고 하는가?

그대의 가시를 두려워하지 않는 적들을 내가

몇 명이나 없앴는가?

그런데 그대는 여름부터 가을까지 그대를 돌본 사람에게

상처를 입혔구나...

 

1926년 가을, 릴케는 장미 가시에 찔렸다.

9월 어느 날, 어느 젊은 여성이 멋진 차를 타고 그의 성으로 왔다.

23세의 니메 엘루이 베이는 이집트 출신의 여성으로 키가 아주 크고 얼굴이 매우 아름다웠으며 굉장한 부자였다. 그녀는 <말트 로리즈 브리게>를 쓴 작가 릴케를 만나고 싶어 왔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 그녀가 떠나려 할때, 릴케는 그녀에게 주려고 서둘러 장미 몇송이를 꺾다가 그만 장미 가시에찔리고 말았다. 그는 상처 부위를 붕대로 칭칭 동여맸다. 그래서 팔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어 글을 쓸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릴케는 너무도 활기차고 생기가 넘쳐서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 같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병세가 심각한 상태였다. 게다가 장미 가시에 찔린 상처가 곪아 손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릴케는 그저 가시에 찔린 데가 아프고 그 때문에 피곤하다고만 생각했는데, 그것이 패혈증으로 발전한 것이다. 11월 30일, 릴케는 발몽으로 갔다. 죽기 딱 한 달전이었다. 릴케는 이미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릴케는 '장미'라는 이름에 딱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사실 릴케는 백혈병 때문에 죽었지, 장미 가시에 찔려 죽은 것이 아니다.

항간에는 그가 패혈증으로 죽었다고 알려졌지만 말이다.

그런데 후세 사람들은 릴케가 장미 가시에 찔려 그 상처가 곪아서 세상을 떠났다고 하는 것이 더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던것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Rainer Maria Rilke)

보들레르 이래 내면화의 길을 걸어온 서구시의 정점을 이뤘다고 평가받는 독일 시인.

몹시 병약하고 섬세한 기질을 갖고 있었던 그는, 평생 잔병치레를 하면서도 많은 여자와 연애를 했다. 특히 1897년에는 니체의 애인이기도 했던 독일 작가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와 사랑을 나누었다. 릴케는 14세 연상의 살로메에게 지대한 영향을 받았으며, 그것을 계기로 문학적 성숙을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