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오신 분은 혹시 한나라 승상이 아니십니까?"
공명이 웃으며 묻는다.
"고명하신 선비께서 어찌 저를 아십니까?"
은자가 말한다. "승상께서 대군을 거느리고 남정길에 오르신 지 오래인데, 어찌 모르겠습니가?"
은자가 공명을 초당으로 맞아들이니, 주객이 서로 예를 갖추고 자리를 나누어 앉았다.
공명이 먼저 입을 연다. "저는 소열황제께서 후사를 부탁하신 중임을 받고, 뒤를 이어 등극하신
폐하의 성지를 받들어 남만을 평정하여 왕화를 입게 하고자 대군을 거느리고 이렇게 왔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맹획이 동중으로 숨어들어가는 바람에 우리 군사들이 아천의 물을 마시게
되었소이다. 지난밤 복파장군이 현성하시어, 어르신이 계신 이곳에 약수가 있으니 저들을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 가르쳐주셨습니다. 바라건대 측은히 여기사 신수를 내려주셔서 죽음에 몰린 군사들의
목숨을 구해주시오." 은자가 답한다. "산야의 폐인에 지나지 않는 늙은이를 승상께서 친히 찾아주셨는데, 어찌 그 걸음을 헛되이 하겠습니까? 그 샘물은 바로 집 뒤에 있으니, 어서 군사들에게 마시게 하십시오."
동자가 나서서 왕평과 말 못하는 군사들을 샘으로 인도하여 물을 마시게 했다.
샘물을 마신 군사들은 한바탕 악기를 토해내더니 즉시 입을 열어 떠들며 좋아했다.
동자가 다시 군사들을 만안계로 안내하니, 군사들은 모두 뛰어 들어 목욕을 했다.
한편 은자는 초암에서 공명에게 잣차와 송화차를 대접하며 말한다.
"이곳 만동에는 독사와 전갈이 많고, 버들개지가 시냇물에 떨어지면 물을 마실 수 없어 새로 우물을 파서 마셔야 합니다." 공명이 은자에게 해엽운향을 물으니 은자는 군사들에게 마음껏 따서 쓰라고 이른 후 말한다.
"이 해엽운향을 한 잎씩 물고 있으면 어떠한 독기도 침범하지 못합니다."
공명이 사례하며 은자의 성명을 물었다. 은자가 웃으며 대답한다.
"이 사람은 맹획의 형 맹절이라 하오." 뜻밖의 대답에 공명은 몹시 놀랐다.
은자가 말을 잇는다.
"승상께서는 아무 의심 말고 제 말을 들어주시오. 우리는 모두 3형제로 맏이는 이 사람 맹절이고, 둘째가 맹획, 막내는 맹우입니다. 부모님께서는 일찍이 세상을 떠나셨고, 두 동생은 성미가 강포하여 왕화를 쫓지 않기로, 제가 여러 차례 타일렀으나 끝내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름과 성을 고치고 이곳에 은거한 것입니다. 이제 아우들 때문에 승상께서 여기까지 와서 고초를 겪으시니, 이 맹절 또한 백번 죽어 마땅합니다. 먼저 승상께 죄를 청합니다."
"옛날 도척과 유하혜(춘추시대 사람으로 도척과 형제.형 유하혜는 현인이고 아우 도척은 도적이었음)와 같은 일이 오늘날에도 있구려."
공명은 이렇게 탄식하고는 말을 이었다.
"내 황제께 아뢰어 귀공을 만왕으로 삼을까 하는데, 어떠신지요?"
"공명(功名)이 싫어서 이곳에 숨어살고 있거늘, 어찌 다시 부귀를 탐내겠소이까?"
공명이 황금과 비단으로 사례하려 했지만 맹절은 끝내 거절했다.
공명은 깊이 탄식하며 초암을 떠나 돌아갔다.
-8- 109
공명이 군사를 거두어 본국으로 돌아가려 하자 맹획은 크고 작은 고을의 동주와 추장들, 그 고장사람들을 거느리고 나와 절하며 전송했다. 선봉이 된 위연의 군사들이 노수에 이르렀다.
때는 9월 가을이었는데 갑자기 검은 구름이 몰려오면서 광풍이 휘몰아쳐 군사들이 강을 건널 수 없었다. 위연은 돌아가 공명에게 이 사실을 고했다. 공명이 그 까닭을 묻자 맹획이 대답한다.
"본래 노수에는 미친 귀신이 있어서 재앙을 일으키니, 그곳을 건너려면 반드시 제사를 지내야 합니다."
공명이 묻는다. "무엇으로 제사를 지내야 하오?"
맹획이 설명한다.
"옛날에 미친 신이 재앙을 일으킬때 칠칠 (七七) 하여 49개의 사람머리와 검은소, 흰양을 잡아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랬더니 자연히 바람이 잦아들고 물결이 고요해졌으며, 나아가 해마다 풍년이 들었습니다." 공명이 탄식한다.
"내 이제 대사를 마쳤는데 어찌 다시 귀중한 목숨을 하나라도 없앨 수 있겠소?"
공명은 몸소 노수 강변으로 가 보았다. 과연 음산한 바람이 세차게 불고 물결이 거칠게 일어 인마가 모두 놀라고 있었다. 공명이 의아한 마음에 그 고장사람을 불러 물으니 그곳 사람이 대답한다.
"지난번에 승상께서 이곳을 건너신 뒤로 밤마다 강가에서 귀신들이 울부짖는데, 황혼 무렵부터 동이
틀 때까지 울음소리가 끊이질 않습니다. 또 짙게 낀 안개 속에서 무수한 음귀들이 해코지를 하여 그후로 아무도 이강을 건너지 못했습니다."
공명이 말한다.
"이 모든것이 나의 죄로다! 지난번에 마대가 거느린 촉군 1천여명이 이 물을 건너다 죽었고, 그후 남만 사람들을 죽여 이곳에 버렸으니 미친 혼령과 원귀가 한을 풀지 못하였을 것이다. 내 오늘밤 물가에서 이들을 위해 제를 올리리라."
그곳 사람이 다시 말한다.
"옛법에 따라 사람머리 49개를 바쳐 제사를 지내면 원귀들이 스스로 물러갈 것입니다."
"사람이 죽어서 원귀가 되었는데 어떻게 또 사람을 죽일 수 있겠는가? 내게 좋은 방도가 있도다."
공명은 즉시 음식을 맡아보는 군사를 불러 명한다.
"소와 양을 잡고 밀가루를 반죽해 사람머리 모양을 만들되 그 속에 쇠고기와 양고기를 채워넣도록 하라."
그것이 이것을 이름하여 만두(饅頭)라고했다.
-8- 144
공명은 학창의에 윤건을 쓰고 두 동자에게 거문고를 들려 적진이 내려다보이는 성루로 올라갔다.
그러고는 난간에 의지하고 앉아 향을 사르며 거문고를 뜩기 시작했다.
한편 성밑에 이른 사마의의 전군은 이 광경을 목격하고, 감히 나가 싸우지 못하고 급히 사마의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사마의가 처음에는 믿지 못하고 웃기만 하더니,
삼군의 전진을 일단 중지시키고 몸소 말을 달려 행렬 앞으로 나가보았다.
과연 공명이 성루 위에 앉아 향을 피워놓고 웃는 얼굴로 거문고를 뜯고 있었다.
공명의 좌우에는 동자가 두명 시립해 있었는데, 왼쪽에 선 동자는 보검을 들고 있고 오른쪽에 선 동자는 손에 주미(사슴꼬리로 만든 먼지떨이)를 들고 서 있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성문 쪽을 보니, 성문 안밖으로 20여명의 백성들이 윗몸을 구부리고 물을 뿌리며 청소를 할 뿐이었다. 15만 대군이 이르렀는데도 전혀 개이치 않는 무심한 그 태도는 방자하기까지 했다.
사마의의 마음에 불쑥 의구심이 일었다. 일단 말머리를 돌려 물러나더니 후군을 전군으로 삼고, 전군을 후군으로 삼아 북쪽 산길로 향하도록 명했다.
둘째아들 사마소가 말한다.
"제갈량이 군사가 없어서 일부러 꾸민 짓인데, 아버님께서는 어찌하여 군사를 물리십니까?"
사마의가 아들을 꾸짖는다.
"제갈량은 매사 신중하여 평생에 위험한 일을 하는 법이 없었다. 이제 저렇게 성문을 활짝 열어놓은
것으로 보아 반드시 매복이 있을터이니 이럴때 우리가 쳐들어간다면 그의 계책에 말려들 뿐이다.
너희들이 어찌 알겠느냐? 속히 퇴군하라."
사마의의 위군은 소리없이 물러갔다. 이를 지켜보던 공명이 마침내 손뼉을 치며 웃었다.
여러관원들이 모두 어리둥절하여 공명에게 묻는다.
"위의 명장 사마의가 정예병 15만을 이끌고 여기까지 왔다가 승상을 보고 저렇듯 서둘러 물러가니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습니다?"
공명이 웃으며 대답한다.
"사마의는 내가 평소 조심성이 많아 위험한 일을 하지 않음을 아는지라, 우리의 태도를 보고 복병이 있다고 의심하여 물러간것이오, 내 오늘일 같은 모험은 행하지 않는 바지만, 이제 형세가 급박하니 부득이 이러한 계책을 썻소이다. 이제 사마의는 필시 군사를 이끌고 샛길로 하여 북산으로 갈것이오. 내 그럴 줄 알고 미리 관흥과 장포 두 사람을 그곳에 매복시켜 지키고 있다가 공격하라 일러 두었소."
공명의 말을 듣고 모든 관원들은 깊이 탄복했다.
"승상의 현묘한 계책은 귀신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저희들 같았으면 벌써 성을 버리고 달아났을 것입니다."
공명이 말한다.
"우리 군사는 겨우 2천5백명뿐이오. 달아난다 해도 얼마 못가서 사마의에게 사로잡히지 않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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